이번에 대기업이 된 기업들을 보면,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이 어떤 곳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어요. 케이팝(K-POP)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기업(하이브)과 팬데믹 이후 살아난 여행‧레저 분야의 기업들이 눈에 띄어요. 미래 산업으로 주목받는 반도체‧이차전지 기업도 빠지지 않았어요.

이런 공시대상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으로 지정되면, 내부 거래나 주식 소유 현황을 공시할 의무 등 여러 규제가 적용돼요. 그리고 이런 기업 중에서 자산 규모가 10조 4000억원을 넘기는 경우엔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으로 추가 지정해서 더 엄격하게 규제해요. 올해는 교보생명보험과 에코프로 2곳이 상호출자 제한 기업 집단에 추가됐어요.

공정위는 자산 규모에 따라 ‘이 그룹은 올해 대기업으로 관리합니다’라고 대기업 집단을 지정하는 동시에 ‘동일인 지정’이라는 것도 해요. 동일인 지정이란 대기업 그룹의 실질적 지배자가 누군지 정하는 걸 말해요. 보통 우리가 ‘기업 총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죠.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동일인은 이재용 회장이에요.

막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기업 집단은 영향력이 강한 만큼 독과점이나 재벌가의 부당한 사익 추구 등 여러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어요. 이럴 때 중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기업의 실질적 지배자를 지정해 두는 거예요.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가까운 친인척의 주식 보유 현황, 본인이 총수를 맡은 회사와 친인척간의 거래 등을 투명하게 공시해야 해요. 서로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주거나 이익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돼 있어요. 당연히 이런 일이 발각되면 동일인이 책임을 져야 하고요.

이번에 대기업으로 지정된 하이브의 경우 최대주주인 방시혁 이사회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됐어요. 이후 동일인으로 지정된 국내 기업 총수 중 방 의장의 보유 주식 가치가 6위에 해당한다는 소식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공정위의 발표 후 하이브와 함께 큰 주목을 받은 기업은 쿠팡이었어요. 방시혁 의장은 바로 동일인이 됐지만, 김범석 쿠팡 의장은 쿠팡이 대기업이 된 지난 2021년부터 4년째 동일인 지정을 피했거든요.

앞서 언급했듯 동일인은 법적으로 여러 규제를 받고, 중대한 책임도 져야 해요. 당연히 재벌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규제예요. 그런데 김범석 의장은 쿠팡의 의결권 4분의 3 이상을 가지고 있어서 기업 총수로서의 지위가 분명한데도 동일인 지정을 피했어요.

지난 2021년 쿠팡이 대기업으로 지정됐을 때 공정위가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못한 건 그가 미국인이고, 쿠팡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해 ‘미국계 기업’이 됐기 때문이었어요. 공정위는 일단 김 의장을 총수로 정하는 대신 ‘쿠팡’이라는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는데, 이때 “형평성이 없다”는 비판이 많이 나왔어요. 개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부당한 사익 추구 금지’라는 규제가 적용되거든요. 법인이 동일인이면 특정한 개인이 아니다 보니 이 규제를 피하게 되고요.

이후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3년간 논의를 했지만, 올해도 김 의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았어요. 쿠팡이 완전히 ‘한국 사업에 투자한 미국 회사’의 모습을 갖춰버렸다는 게 이유예요. 투자자도, 본사 위치도, 대주주인 김 의장의 국적도 모두 미국이니까요.

동일인 제도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아요. 재벌 총수 일가의 부당한 사익 추구를 막으려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빠져나갈 구멍은 늘어난다는 지적 때문이에요. 일부 회사만 규제를 빠져나가며 형평성 문제가 커졌다는 지적도 많이 나와요.

사실 쿠팡 외에도 개인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경우가 있긴 해요. 미국 기업인 GM이 투자해 만든 한국GM이 대표적인 사례예요. 공기업으로 시작한 KT‧포스코처럼 재벌 경영자가 없거나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경우에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요.

다만 쿠팡의 경우는 대부분 사업을 한국에서 하기에 GM(제너럴모터스)과 분명히 다르고, 확실한 최대주주가 있다는 점에서 KT나 포스코와도 달라요. 공정위는 이런 쿠팡의 특수성을 고려해 제도를 조금 수정했어요. 쿠팡처럼 법인을 동일인으로 정할 수 있게 하는 예외 규정을 만들었죠. 동일인 지정 기준을 조금 더 명확히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이 부분도 ‘제도를 빠져나갈 구멍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요. 새로 만든 규정은 ‘기업을 지배하는 사람과 그 친족이 경영 참여, 계열사 투자, 자금 거래 등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하에 법인을 동일인으로 정할 수 있게 했어요. 간단히 말해 ‘가까운 친척이 회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면’ 개인의 총수 지정을 피하게 해준다는 거죠.

이 규정 덕에 또 다른 대기업 집단인 ‘두나무’도 기존 동일인이었던 송치형 회장 대신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됐어요. 결국 예외가 자꾸 늘어나는 모양새가 된 거예요. 그래서 형평성을 지키지 못할 바에는 아예 제도를 없애거나 대폭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어요.

대기업 총수의 사익 편취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동일인 제도, 이 제도의 취지는 앞으로도 지켜질 수 있을까요?